はっぴべんざいてん 八臂弁才天
19th century(江戸時代 19世紀)
絹本着色
細長い画面の中央に座っているのは、勝運、福徳、音楽などを司る女性神として広く信仰を集めた弁才天です。仏教の経典中に「常に八臂をもって自ら荘厳す」と記述があるとおり、鉾、弓矢などを携えた「八臂(八本の腕)」の姿をしています。美人画的要素もしばしば含む弁才天像ですが、本作ではとくに柔らかで優し気な微笑みが印象的。そのモデルは、芳崖の妻・よしであるともいわれています。
弁才天が座る岩棚は水景にたたずむ洞窟のようになっており、周囲を雲霞が覆い、神々しく幻想的な雰囲気を高めています。右下にある落款(サインと印章)などから、芳崖が妻と結婚した頃(安政四年(1857)、30歳頃)もしくは岩の描き方などに、若い頃に取り組んだ雪舟研究の成果が表れはじめている特徴から、30歳代に入ってからとの指摘があります。芳崖が得意とした緻密な描写と、微妙な諧調を駆使した色使いといった特色がよく発揮された、壮年期の傑作のひとつです。
狩野芳崖【かのう ほうがい】
生没年 1828~1888(文政11年~明治21年)
長府藩御用絵師の家に生まれ、19歳で江戸の狩野家に入門。明治維新では身分と家禄を失う苦境に立たされますが、50歳で再び上京して活躍を重ね、東京美術学校(現:東京藝術大学)の設立にも尽力しました。狩野派の正統を受け継ぎつつ、新しい空間表現や斬新な色彩感覚を駆使した先進的な作風で、黎明期の近代日本画をリードしました。
寸法 | 119.7×32.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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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状 | 掛幅 |
Eight armed Sarasvati
19th century
Color on silk
Sitting in the center of the long, narrow picture is a goddess of victory, wealth and music who was worshipped by many people. As described in the Scripture of Buddhism, she has eight arms that hold weapons like a sword and a bow and arrow. Pictures of Benzaiten often imply the elements of bijin-ga (pictures of beautiful women). This work, in particular, is impressive for her soft and gentle smile. The model of Benzaiten in this picture is said to have been Hogai’s wife, Yoshi.
The ledge on which Benzaiten is seated looks as though it stands at the mouth of a cave set in a waterscape. The areas around her are covered with clouds and haze, creating simultaneously a solemn atmosphere and an air of fantasy. Judging from the signature and seal found in the lower right corner of the picture, it has been surmised by some that this work was painted around the time that Hogai was about 30 years old and married Yoshi (1857). Others say that it was created after he was in his 30’s, because it begins to show the results of his study of Sesshu, which began when he was young. This is one of the masterpieces created after he attained manhood. It clearly reveals the characteristics of his artistry, such as the elaborate delineation of form and the way he makes subtle use of various colors and shades.
Kano Hogai (1828 – 1888)
Hogai was born to the family of a court painter of the Chofu domain. He started training under the Kano family in Edo (the present-day Tokyo) at the age of 19. When the Meiji Era began in 1868, he lost his position and stipend and found himself in a difficult predicament. At the age of 50, he returned from Chofu to Tokyo and worked hard. He also participated in efforts to establish the Tokyo Art School (now the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With his advanced painting style, he led the development of modern Japanese-style painting at the dawn of the new age. He had been trained in the orthodoxy of the Kano School, but added to this his free use of a new technique for expressing space and an innovative sense of color.
Size | 119.7×32.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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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臂辯才天
狹長畫麵中央端坐著辯才天,是大眾信仰的掌管好運、福德、音樂的女神。佛教經典中有“常以八臂莊嚴自身”的記述,總是攜帶著矛、弓箭等的“八臂(八條手臂)”姿態。辯才天畫像是美人畫,但本作品中的溫柔微笑更讓人印象深刻。其原型據說是芳崖的妻子——Yoshi。
辯才天所坐的岩棚像是佇立在水景中的洞窟,周圍雲霞繚繞,有種神聖而夢幻的感覺。右下角的落款(簽名與印章),顯示是芳崖與妻子結婚時候(安政四年(1857年),30歲左右)。但在岩石的畫法特征上,又凸顯了其年輕時研究雪舟的成果,所以也有人說是30歲以後的作品。充分體現了芳崖擅長的細致描繪,以及駕馭色調細微變幻的特征,是其成熟時期的傑作之一。
狩野 芳崖
生卒年 1828~1888(文政11年~明治21年)
出生於長府藩禦用畫師之家,19歲進入江戶狩野家。明治維新時期,失去了地位與家祿,陷入困境,50歲時再次來到東京大展拳腳,為設立東京美術學校(現在的東京藝術大學)盡心盡力。不僅繼承了狩野派的正統,新的空間表現形式,以及新穎的色彩感,形成的的新進畫風,引領了早期的近代日本繪畫。
尺寸 | 119.7×32.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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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비변재천
얇고 긴 화폭 중앙에 앉아있는 인물은 승리의 운, 복과 덕, 음악 등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숭배된 변재천입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 「항상 팔비를 가지고 스스로 장엄하라」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창과 활 등을 들고 있는 「팔비(여덟개의 팔)」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미인화의 요소를 갖기도 하는 변재천상인데, 본 작품에서는 특히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가 인상적입니다. 본 작품 속 변재천의 모델이 된 것은 호가이의 부인 ‘요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변재천이 앉은 바위는 물이 흐르는 풍경 위로 우뚝 솟아있는 동굴 같은 모양이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과 안개 덕분에 그림 전체에서 거룩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제작시기는, 오른쪽 하단에 있는 낙관(사인과 인장) 등을 통해 호가이가 부인과 결혼했던 즈음(1854년-안세이4년, 30세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바위를 그리는 수법 등 젊었을 때 행했던 셋슈 연구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특징들을 보아 삼십대에 들어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호가이가 자신 있어 했던 치밀한 묘사와, 미묘한 해조를 구사한 색 사용 등 특색이 잘 발휘된 그의 장년기 걸작 중 하나입니다.
가노 호가이
생몰년 1828년 ~1888년 (분세이11년~메이지21년)
조후번 어용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열아홉의 나이로 에도 가노 집안에 제자로 들어갑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과 가록을 잃게 되는 곤경에 처하지만, 50세때 다시 상경하여 활약을 거듭하며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 설립에 힘썼습니다. 가노파의 정통을 이어 나가면서도 새로운 공간 표현이나 참신한 색채 감각을 구사한 선진적인 작풍으로, 여명기의 근대 일본화를 이끌었습니다.
치수 | 119.7×32.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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