なにわやおきた 難波屋おきた
1793(寛政5年)
大判錦絵
おきたは、浅草随身門脇の水茶屋(みずちゃや)難波屋の評判娘で、この作品が制作された寛政5年当時は、16歳でした。歌麿をはじめ、多くの浮世絵師たちに描かれ人気を得ました。煎餅屋の娘である高島おひさ、吉原芸者の富本豊雛(とよひな)とともに、寛政の三美人と称されました。
背景は、雲母の粉を使った「雲母摺(きらずり)」という技法が用いられ、キラキラとした光沢が見られます。
喜多川歌麿【きたがわ うたまろ】
生没年 ?~文化3年(?~1806)
安永4年(1775)から文化3年(1806)にかけて活躍しました。寛政3年(1791)頃から、数多く手がけるようになった美人大首絵で高い評価を得て、当時の美人画の第一人者となりました。
寸法 | 37.5×25.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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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状 | 版画 |
版元 | 蔦屋重三郎 |
寄贈者名 | 浦上敏朗 |
Okita of the Naniwaya Tea-House
1793
Okita was a beautiful waitress working for the Naniwaya tea-house, which was located near the front gate of the Asakusa temple in the city of Edo. In the 5th year of the Kansei era (1793), when this print was made, she would have been about sixteen years old. Okita was depicted by many ukiyo-e artists, including Utamaro, and prints of her became very popular with the public. She was called one of the Three Beauties of the Kansei era, along with Takashima Ohisa, the daughter of a confectionary shop owner, and Tomimoto Toyohina, a geisha girl of the Yoshiwara pleasure quarter.
This print was made by the kirazuri technique, using powdered mica, which gives a bright gloss to the picture’s background.
Kitagawa Utamaro (? – 1806)
Kitagawa Utamaro was active as an ukiyo-e artist during the period from the 4th year of the An’ei era (1775) to the 3rd year of the Bunka era (1806). He made a number of bijin-ookubi-e prints (half-length portraits of beautiful women) and he attained an outstanding reputation for his work. He became the leading ukiyo-e artist of bijin-ga prints during that time.
Size | 37.5×25.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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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or Name | Uragami Toshiro |
難波屋Okita
1793
Okita是淺草隨身門旁的水茶屋——難波屋的受歡迎的少女,此作品製作於寬政5年,她當時16歲。以歌麿為首,眾多浮世畫師都描繪過她,很是人氣。她與煎餅屋的女兒高島Ohisa、吉原藝妓的富本豐雛,並稱為寬政三美人。
背景使用了雲母粉的“雲母摺(疊刷)”技法,閃亮而有光澤。
喜多川歌麿(Kitagawa Utamaro)
生卒年 ?~文化3年(?~ 1806)
活躍於安永4年(1775年)至文化3年(1806年)。從寬政3年(1791年)開始,創作了大量的美人大頭畫,獲得了很高的評價,成為當時美人畫第一人。
尺寸 | 37.5×25.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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捐贈者 | 浦上敏朗 |
<나니와야의 오키타>
1793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오키타는 센소지 절 정문 근처에 있던 찻집인 나니와야의 어린 여성 종업원으로, 이 작품이 제작된 간세이 5년 당시,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그녀는 우타마로를 비롯한 많은 우키요에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센베가게의 종업원인 다카시마 오히사, 요시와라 게이샤인 도미모토 토요히나와 함께 간세이시대 삼대 미인으로 불렸습니다.
배경은 운모 가루를 사용한 「기라즈리」라는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그로 인해 반짝이는 광택을 볼 수 있습니다.
기타가와 우타마로
[?~분카3년(?~1806)]
안에이 4년(1775)부터 분카3년(1806)에 걸쳐 활약했습니다. 간세이3년(1791)경부터 수많은 작업을 하게된 미인 상반신 우키요에로 높은 평가를 받아 당시 미인화의 1인자가 되었습니다.
치수 | 37.5×25.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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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명 | 우라가미 토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