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口県立美術館 YAMAGUCHI PREFECTURE ART MUSEUM

しゃくかんりょうしんし(しゃつ) 作品名6_07

殿敷 侃 とのしき ただし

1979(昭和54年)

油彩/カンヴァス

1945年8月6日午前8時15分、広島市上空に飛来した米軍機B29から、原子爆弾<リトルボーイ>が投下されました。殿敷侃は、この爆弾によって、爆心地直近の郵便局に勤めていた父・寛を失うこととなります。
その数日後、夫を探すため広島市に入った妻は3歳児の侃を背負いながら、跡形すらなくなっていたと思われる郵便局の近辺を歩き回った後に力尽き、夫の亡骸の代わりに、転がっていた鉄かぶとを拾い、寄せ集めた土を入れて持ち帰りました。5年後、その時の二次被爆が原因で、殿敷は母親をも失うこととなります。
この作品は父母の遺品をモチーフとした一連の作品の一つです。「両親の死」というテーマは、1972年に国鉄を退職して長門市に居を構えた後、「画家」として制作に向き合うなかで、自ずと浮かび上がってきたものでした。2年前に制作された《釈寛量信士(鉄かぶと)》と同様、執拗なまでの細かい点描で、父親が生前に着古したシャツが描かれています。

殿敷侃【とのしき ただし】
生没年 1942~1992(昭和17年~平成4年)
広島市生まれ。高校卒業後、国鉄に就職したものの、幼時の二次被爆が原因で、1年におよぶ入院を余儀なくされます。この時、絵を描き始めた殿敷は、その後10年を経て長門市に拠を移し、画家として歩み始めました。1980年代半ばから、廃材によるインスタレーションで全国的な評価を得始めた矢先、1992年に逝去。享年50歳でした。

寸法 91.0×116.8cm
形状 額装

山口県立美術館 YAMAGUCHI PREFECTURE ART MUSEUM

Syakukanryoshinshi [shirt: a memento of my father]

Tonoshiki Tadashi

1979

Oil on canvas

At 8:15 am on August 6, 1945, an American B29 bomber released the atomic bomb Little Boy high above the city of Hiroshima. Tonoshiki Tadashi lost his father Kan that day, who was working at a post office right near the center of the blast. Shakukanryo Shinshi is his father’s posthumous (Buddhist) name.
A few days later, his mother came into Hiroshima to search for her husband, with three-year-old Tadashi on her back. After wandering around the devastated city, finding no trace of the post office, she finally gave up any hope of locating her husband’s body. Then she came across a metal helmet lying on the ground. She gathered up some earth from the spot and carried it home in the helmet. Five years later, she too succumbed to the secondary impacts of radiation. Tonoshiki had now lost both his parents.
This work is part of a series by Tonoshiki based on the motif of things his parents left behind. The overarching theme of the death of his parents came almost spontaneously to Tonoshiki some time after he had reinvented himself as a painter, having retired from his job at the railways in 1972 and moved to Nagato City, Yamaguchi Prefecture. This determinedly detailed sketch of a cast-off shirt once worn by his father shows a similar intent to Shakukanryo Shinshi — helmet, produced two years earlier.

Tonoshiki Tadashi 1942 – 1992
Born in Hiroshima. After finishing high school, he joined the national railways but was hospitalized for as long as one year due to the effects of “secondary” radiation from the A-bomb dropped in Hiroshima when he was in his childhood. He began painting at this time, and after ten years relocated to Nagato City, Yamaguchi Prefecture to establish himself as a painter. In the mid-1980s he started to attract nationwide attention for his installations created from scrap materials, but tragically he died in 1992 at the age of just 50.

Size 91.0×116.8cm

山口県立美術館 YAMAGUCHI PREFECTURE ART MUSEUM

釋寬量信士(襯衫)

殿敷 侃

1979

1945年8月6日上午8點15分,美軍飛機B29在廣島市上空,投下了原子彈“小男孩”。因為這個炸彈,殿敷侃失去了工作在爆炸中心附近郵局的父親——寬。
數日後,去廣島尋找丈夫的妻子背著3歲的侃,在連痕跡都不剩的郵局附近走來走去,直到精疲力盡,隻能拾起路邊的鐵頭盔,填滿泥土當作是丈夫的屍骸並其帶回家。五年後,由於爆炸後核輻射的影響,殿敷又失去了母親。
此作品是以父母遺物為主題的係列作品之一。這是殿敷侃於1972年從國鐵退休,定居長門市之後,作為“畫家”進行創作的過程中,腦中自然浮現的“雙親之死”主題。與2年前製作的《釋寬量信士》一樣,用執拗且細致的點彩,描繪了父親生前穿過的舊襯衫。.

殿敷侃
生卒年 1942~1992(昭和17年~平成4年)
出生於廣島市。高中畢業後,在國鐵就職,但因為幼年遭受原子彈核輻射,住院時間長達一年。這時,開始畫畫的殿敷,在之後的10年裏,輾轉去了長門市,開始了畫家的生涯。20世紀80年代中期開始,以廢棄材料製作的裝置作品得了全國好評,1992年逝世。享年50歲。

尺寸 91.0×116.8cm

山口県立美術館 YAMAGUCHI PREFECTURE ART MUSEUM

석관량신사(셔츠)

도노시키 타다시

1979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시 상공, 미군 전투기B29에서 원자폭탄<리틀보이>가 투하되었습니다. 도노시키 타다시는 이 폭탄으로 인해 원폭 투하 지점 근처 우체국에서 일하던 아버지 도노시키 히로시(寛)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을 찾기 위해 히로시마시로 간 부인은 세 살의 아들을 업고 흔적조차 남지 않은 우체국 부근을 지칠 때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결국 남편의 유해 대신 굴러다니던 철모를 주워 그 안에 주변에 있던 흙을 넣어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5년 후, 그 때의 2차 피폭으로 인해 도노시키는 어머니도 잃게 됩니다.
이 작품은 부모의 유품을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 중 하나 입니다.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테마는, 1972년 국철을 퇴직한 도노시키가 야마구치현의 나가토시로 거처를 옮긴 후, 「화가」로서 작품 제작에 힘을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른 테마였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기 2년 전에 제작한 《석관량신사(釈寛量信士)(철모)》처럼, 집요할 정도로 세밀한 점묘기법으로 아버지가 생전에 오래 입어 낡은 셔츠를 그렸습니다.

도노시키 타다시
생몰년 1942~1992 (쇼와17년~헤이세이4년)
히로시마시 출생. 고등학교 졸업 후 국철에 취직하지만 유년기에 입은 2차 피폭이 원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1년이 가까운 시간을 입원하게 됩니다. 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도노시키는 10년 후 야마구치현 나가토시로 거취를 옮기고 화가로서의 길을 걷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폐재를 활용한 설치 미술로 전국적으로 호평을 막 받기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1992년, 향년 50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치수 91.0×116.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