ひかりのかいがら 作品名6_19
1949(昭和24年)
ゼラチン・シルヴァー・プリント
昭和21年(1946)から翌年にかけて、福田はたて続けに写真集を出版しました。「裸婦五態」、「人体頌歌」、「花と裸婦」。いずれもヌードを掲載した写真集で―残念ながらいずれも発禁処分-、この時期の福田は集中的にヌード写真を探求していたのです。
昭和24年(1949)に発表されたこの作品は、その最大の成果といえるでしょう。見えているのは、顔の一部と身体のごく一部のラインのみ。大半は写真全体を覆う闇の中に沈んでいます。ヌード写真というよりは、一人の女性の裸体から、光によって抽出された曲線の美といった方がいいかもしれません。2年後、福田はヌード写真について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写真家は、裸体を一つの大理石の石塊として考えなくてはいけない。そこで写真家は「鑿」の代わりに「カメラ」でそれを表現し、自己の思うままの裸像を築き、穿ち、創らなければならない。」
《光りの貝殻》を創造したからこその言葉といえるかもしれません。
福田勝治【ふくだ かつじ】
生没年 1899~1991(明治32年~平成3年)
防府市生まれ。昭和11年(1936)から『アサヒカメラ』に「女の写し方」を連載。女性写真の巨匠として絶大なる人気を誇りました。戦後初の写真雑誌の表紙は福田の女性写真が飾っています。光と影による構成を重視するモダニズム写真を一貫して撮り続け、孤高のモダニストと称されました。1991年逝去、享年92歳でした。
寸法 | 40.4×32.0(41.4×3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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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状 | マット装 |
Nude, the shell illuminated
1949
Gelatin silver print
Fukuda continued to release photograph collections during 1946 and 1947, including Five Versions of the Nude, Anthem for the Human Body, and Flowers and Nudes. All the collections featured nudes, reflecting Fukuda’s interest at that time in photographing the nude form, and all were promptly banned.
This work from 1949 is arguably the best from that period. All that can be seen is part of the face and a few suggested strokes outlining the body. The majority of the photograph is darkness. It is not so much a photograph of a nude as an exercise in the use of light to hint at the contours of the body. Two years later, Fukuda had this to say about nudes: “As a photographer, you have to think of your subject as a piece of marble. Instead of chipping away at it with a chisel as does a sculptor, you are using the camera to express the form, to share with others the vision of the nude that you have in your head.”
Light Shell is surely the perfect embodiment of this approach.
Fukuda Katsuji 1899 – 1991
Born in Hofu City, Yamaguchi Prefecture. In 1936, Fukuda started to produce the series How to Photograph Women for Asahi Camera magazine and gained a reputation as the preeminent master of female photography. A photographic magazine that was published in Japan for the first time after the war featured a Fukuda female photograph on the cover. Fukuda maintained a modernist approach to the composition of light and shade in his photographs, and was known as a staunch modernist. He died in 1991 at the age of 92.
Size | 40.4×32.0(41.4×3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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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之貝殼
1949
從昭和21年(1946年)到其後的第二年,福田不斷出版寫真集。《裸女五態》、《人體頌歌》、《花與裸婦》。都是刊登了裸體的寫真集,但很遺憾全都被禁止發行,這個時期的福田主要專注於探求裸體寫真。
昭和24年(1949年)發表的這部作品,可以說是其最大成就。畫麵可見的,隻有一部分臉以及一小部分身體的線條。大部分都沉浸在覆蓋整張照片的黑暗中。與其說是裸體寫真,不如說是從一個女性的裸體上,通過光線提煉出的曲線美。2年後,福田對裸體寫真做了如下描述。
“攝影家必須把裸體看作是一塊大理石的石塊。用‘鏡頭’代替‘鑿子’去表現,構築、穿透並創造出自己所想的裸像。”
這正是創造了《光之貝殼》才能說出的話吧。
福田勝治
生卒年 1899~1991(明治32年~平成3年)
生於防府市。昭和11年(1936年)開始在《朝日相機》上連載《拍攝女性的方法》。作為女性寫真的巨匠擁有超高的人氣。戰後第一本攝影雜誌的封麵就是福田的女性寫真。他一貫堅持著拍攝注重光影結構的現代主義照片,被稱為孤傲的現代主義者。1991年逝世,享年92歲。
尺寸 | 40.4×32.0(41.4×3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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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패각
1949
1946년(쇼와 2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후쿠다는 연이어 사진집을 출판하였습니다. 「나부오태(裸婦五態)」「인체송가 (人体頌歌)」「꽃과 나부(裸婦)」. 모두 누드 사진집으로, 안타깝게도 모두 발매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이 시기의 후쿠다는 집중적으로 누드 사진을 탐구했습니다.
1949년(쇼와2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그 최대의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얼굴의 일부와 아주 일부분의 신체 라인 뿐입니다. 대부분은 사진 전체를 가린 어둠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누드 사진이라기보다는 ‘여성 한 명의 나체를 두고 빛으로 만들어낸 곡선의 미’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 후 후쿠다는 누드 사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진가는 나체를 하나의 대리석 돌덩이로 생각해야만 한다. 사진가는 ‘끌과 정’ 대신에 ‘카메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의 나상을 구축하여, 핵심을 찌르고, 만들어야만 한다 」
《빛의 패각》을 창조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쿠타 카츠지
생몰년 1899~1991 (메이지32년~헤이세이3년)
호후시 출생. 1936년(쇼와11년)부터 『아사히 카메라』에 「여자를 찍는 법」을 연재. 여성 사진의 거장으로서 아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쟁 후 첫 사진 잡지의 표지를 후쿠다가 찍은 여성 사진으로 꾸몄을 정도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구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사진을 찍었고, 고고한 모더니스트라 칭송되었습니다. 1991년 서거, 향년 92세였습니다.
치수 | 40.4×32.0(41.4×3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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